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水仙花)는 물가에 있는 선녀 같은 꽃이라는 뜻입니다. 외국에서는 나르키소스(Narkissos)라는 미소년의 이름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미소년이라서 많은 여인들의 구애를 받았는데 모든 구애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상한 여인들이 복수의 여신에게 자신들의 고통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여신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나르키소스는 사냥을 하나 물을 마시려 물가에 갔다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 결국 물에 빠져 죽고 그가 죽은 곳에는 수선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은 자기애를 의미하면 수선화의 꽃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서양의 신화에 나오는 수선화를 본 것 같습니다. 자기애에 빠져 꽃이 되어버린 슬픈 나르키소스는 채워지지 않은 외로움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외로움은 나르키소스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라고 합니다. 누구든 사람은 외로워한다고 수선화를 위로합니다.
'괜찮다 외로워해도 괜찮다' 합니다. 사람이든, 꽃이든, 산그림자도, 종소리도 외로워 몸서리치니까요.
3월에서 4월 경에 수선화가 피는데 올해의 수목원에는 수선화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늦은 걸까요? 아니면 너무 빨랐던 것일까요? 타래붓꽃과 양귀비는 폈던데 말이죠.
연꽃구경 - 정호승
그리고 날이 더워지고 5월이 다가오면 또 다르게 핀 꽃은 연꽃입니다.
시인의 시집에는 연꽃에 관한 시도 있습니다.
연꽃 구경
정호승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
연꽃처럼 살아보자고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게 연꽃 같은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해가 질 때쯤이면
연꽃들이 오히려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다
"연못이 왜 이래 흙탕물이 되었니?"
지나가는 분들이 흙탕물이 된 방지원도를 보면 투덜거립니다.
연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더러운 물에서도 화려하고 깨끗한 꽃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더러운 물을 정화까지 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데요.
시인은 연꽃이 되지 못한 사람들 대신 연꽃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더러운 사람이 되었다는데요. 그렇게 사람을 정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글쎄요. 저는 연꽃이 더러운 물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이유는
고귀한 정신으로 더러움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곳이 더러운 곳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연꽃이 사람이,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된 것도
가장 더러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연잎차를 마셔보려고 합니다.
우리 꽃 연구소의 연잎차
이 연잎차는 샘플로 받은 1개만 있는 연잎차인데요. 티백으로 만들어 있으며 약 1g 정도였습니다.
뜨거운 물 150ml에 3분간 우려내었는데
진한 노란색의 투명한 수색입니다. 200ml의 물을 사용해도 괜찮을 만큼 진하게 우려 나왔습니다.
진한 수색만큼 진한 연잎향입니다.
약간 매운 느낌도 있는데요. 그래서 연잎밥에서 느껴지는 연잎의 향이라기보다는 절에서 나는 향내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매운맛과 구수한 맛, 그리고 단맛이 있으며, 질감은 부드러운 질감입니다.
약간 꼬릿 할 정도로 진한 연잎향입니다.
풍경 달다 - 정호승
그러고 보니 절에 풍경이 있었던가요? 가본 적이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저는 절보다는 한옥카페에서 풍경을 더 많이 본 듯하지만 그래도 풍경은 절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꼭 연인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리움이 남아 있을 누군가에게 이 시를 읽으면 아련한 풍경소리가 들리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풍경소리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진한 연잎차 향만 바람이 되어
비강의 점막을 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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