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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그리고 책, 문학, 예술

[차와 문학]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그리고 민트티

by HEEHEENE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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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독일인인지 한국인인지도 모르던 어린시절 누이의 책꽂이에 '크눌프'라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거센소리의 '크'가 마음에 들어서 였을까요. 괜실히 멋져보이는 이 소설을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저한테는 조금 어려웠는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눈밭에서 죽었다는 마지막 내용만 기억에 있는 소설이었지요.

인터넷에서 Royal Orchard라는 곳에서 헤세가 독일인인지 한국인인지도 모르던 어린시절 누이의 책꽂이에 '크눌프'라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거센소리의 '크'가 마음에 들어서 였을까요. 괜실히 멋져보이는 이 소설을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저한테는 조금 어려웠는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눈밭에서 죽었다는 마지막 내용만 기억에 있는 소설이었지요.

인터넷에서 Royal Orchard의 차를 구매했습니다. 가격은 높아서 선물용으로 보이는 이 차 중에서 Blue mint 라는 허브티를 마시기로 계획을 하고 이번에는 이 민트티와 어울리는 책을 찾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Blue mint는 페파민트와 한국의 박하를 적정 비율로 블렌딩한 티라고 합니다.  

이참에 민트에 대해서도 좀더 알아보면서 민트차 느낌이 나는 책이 뭐가 있을까요? 민트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님프인 멘테에서 유래해서 그리스신화를 할까? 그녀를 죽인 지옥의 여왕인 페르세포네에 관련된 그림을 해야할까요? 그렇게 고민하면서 도서관의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데 예전에 읽었던 크눌프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센소리 '크' 때문인지 괜히 연관시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의 책은 크눌프이고, 관련된 차는 민트차입니다. 우선 책에 관한 이야기 부터 하겠습니다.


책 크눌프에 관하여

이 책은 1907년에서 1914년 사이에 독일의 잡지에 실렸던 작품으로 1915년 잡지에 실렸던 내용이 책으로 묶여 피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는 '19세기 말의 사랑스러운 독일의 모습'이 담겨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가 읽은 번역된책은 1997년에 1쇄가 펴낸 민음사의 책입니다. 책 내용만 하면 135페이지의 두껍지 않고 크지도 않는 읽기 편한 양의 소설입니다. 

내용이 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자 헤르만 헤세

1877년 독일 남부칼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를 도망쳐 시계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으로 일하다 15세에 자살을 시도하는 등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십대부터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크눌프는 그중에서도 초기 작품이며 우리나라에 유명한 데미안은 1919년 개인적인 삶에서 큰 위기를 겪으면서 작품의 전환점이 생기면서 쓴 작품중에 하나입니다.1943년에 유리알 유희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1962년 고향에서 영면했습니다.

 

크눌프 책 내용

헤르만헤세의 삶에 대한 내용을 읽어보고서야 왜 크눌프가 어린시절 라틴어학교를 도망치고, 몇가지 생활 기술도 가능한 인물인줄 알 수 있었네요. 크눌프는 헤르만헤세의 또다른 자아인것 같습니다. 크눌프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능숙하고, 탐욕스럽지도 않으며, 성격이 유려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입니다. 하지만 사랑도 직업도 정착하지 못한 그는 떠돌아다니면서 폐결핵까지 걸려서 죽어갑니다. 죽어가면서도 병원에 가기보다는 고향에 가서 돌아다니죠. 

일반 시민들이 신의 소명이라며 직업에 성실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모습과는 다른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크눌프는 죽는 순간에도 갈등을 하며 신에게 대답을 요청합니다. 

신에게 까지 사랑을 받는 크눌프는 대화를 유지하면서 대답을 듣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 내용은 이 부분들이라 생각해서 신의 대답을 옮겨 봅니다.

이 철부지야,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근심 걱정 모르는 방랑자가 되어 이곳 저곳에서 어린아이 같은 행동과 어린아이의 웃음을 전달해 주어야만 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니? 그래서 세상 곳곳의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너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겠니?

이 소설은 헤르만헤세가 가정을 막 꾸리고 안정되려는 시점에 썼다고 합니다. 시민으로서 생활의 업무를 견습생으로 경험해본 그로서 예술가로의 삶이 신의 소명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갈등을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또다른 신의 말씀부분을 볼까요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해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 주어야만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주는 친절한 신이군요. 헤르만헤세의 결론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모습 또한 신의 소명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이에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크눌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사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크눌프라면 신의 소명이라는 직업과 가정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신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외치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크눌프에게서 짜라투스트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크눌프는 완전한 위버멘시가 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갈등하고 고민하고 아파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합니다. 

지금이야 연예인, 작가가 인정받는 직업이지만 19세기 독일이라면 신의 소명을 저버린 이들로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보다는 헤르만헤세의 크눌프같은 타협하는 인간이 조금더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과 가까워보이기도 합니다. 

 

민트이야기

그리고 오늘의 차인 민트와도 비슷하죠.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그리스신화에서 하데스는 지하의 왕입니다. 그리고 대지의 신데메테르와 제우스의 사이의 딸인 페르세포네와 결혼을 하지요. 몇가지 우여곡절이 있지만 페르세포네는 지하의 여왕이며, 대지의 신의 딸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멘테라는 님프가 하데스에게 반해 지하세계까지 따라오자 페르세포네는 그녀를 밟아 죽입니다. 죽은 곳에서 자란 식물이 민트 특히 페파민트라는데 밟아도 그 향이 강하게 난다고 합니다. 

애플민트, 페퍼민트, 나나민트, 스피아민트

민트는 잘 죽지도 않을뿐더라 교잡도 잘해서 지역마다 멘톨향을 지닌 다양한 민트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녀석이 후추향이 나는 페파민트, 창모양의 스피어민트, 모로코에서 마시는 나나민트, 사과향이 나는 애플민트, 동양에서 자라는 동양박하등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잡초이지만 긴장성소화기장애에 이완효과가 있으며, 향균과 통증완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파스의 화한 성분이 멘톨이고 민트의 성분이니 알만하지요

 

민트차

민트로만 블렌딩한 차라지만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네요. 오늘은 황사가 가득해서 몸도 마음도 찌뿌둥한 날인데 말이죠. 시원한 멘톨향이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토종박하 60%와 페파민트40%로 블렌딩을 했다고 합니다. 보통의 민트차는 전체적인 느낌이 헐거운 감이 있고 쓴맛이 강해서 단독차로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운 편입니다만 이 차는 쓴맛과 헐거움이 적습니다. 괜찮은 바디감과 쓰지 않는 맛이 매력적인 민트차이네요. 두통이 가시는 듯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민트와 크눌프

그러고보면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고통에 크눌프는 민트잎을 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에게 저항을 했더라면 좀더 민트스럽겠지만 제가 읽은 크눌프의 신은 실제의 신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초자아를 투영한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당시의 신이라면 크눌프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신을 만들어냈죠. 눈산을 오르면서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스스로의 천국으로 향합니다.

지하의 여왕에게 밟히면서도 더욱 강하게 향을 뿜어내는 멘테처럼요. 곡물처럼 배를 불려주지도 않고, 포도처럼 달콤한 과실을 주는 풀도 아닙니다. 그저 잡초일 뿐이지만 끈질기게 살아남고 향을 남겨줍니다. 그 향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고통을 줄여주고 소화를 도와주는 귀한 성분이죠. 크눌프의 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복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가요? 민트차와 크눌프 조금 닮아 보이는가요?

저는 막연하게만 닮았다고 생각한 첫 느낌보다 책을 다시 읽고, 찾아보고 고민을 하면서 좀더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헤르만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인 크눌프는 본인의 삶에서 참고를 해서 그렇게 살아가보고픈 인물은 아니었을까요? 동시대에 살았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보이차 같은 느낌이라 몸에는 좋지만 비싸고 어렵고 맛은 없지만 크눌프는 조금 더 친숙하고 가까운 민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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