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7월 여름에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환경을 보면 더위를 잘 이겨낼 것 같지만 젊은 시절 더위 속에서 몸을 조금 거칠게 다루면서 여름만 되면 술 없이도 몽롱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여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이미 가을로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주는 여름에 관한 시를 찾아보았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휴가철 추천도서로 다양한 책을 추천하는 중에 안희연 시인의 '여름언덕에서 배운 것'이라는 시집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도서관에 있어서 빌릴 수 있었는데요.
시를 인용해봅니다.
여름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
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
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
적당한 햇살
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 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었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
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 얼마 전부터 흰 토끼 한 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그 뒤론 계속 내리막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밤이 왔다
언덕은 자신에게
아직 토끼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들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토끼일까
쫓기듯 쫓으며
나는 무수한 언덕 가운데
왜 하필 이곳이어야 했는지를 생각했다
가고 있다는 사 실 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시인에게는 왜 하필 여름 언덕이었을까? 어느 날 걷고 있는데 언덕이었고 언덕에는 많은 물웅덩이가 있는 여름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이 슬퍼하는 듯한 언덕에게 왜 그러냐 했더니 흰 토끼 한 마리가 없어졌다 했습니다.
그렇게 밤이 오고 내리막을 걸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시인의 여름, 언덕, 그리고 토끼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고 있으면서 떠오로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토끼는 지나가버린 어떤 시간은 아닐까 라는 상상이 들었습니다.
그럼 여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
'여름이라는 단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적의가 감춰져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풀과 나무들이 저토록 맹렬하게 자라날 수는 없다
'빚진 마음의 문장- 성남은행동 부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 현대문학 2019, 98면
게다가 작가님의 인터뷰에 있는 '여름'에 대한 느낌도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거칠지만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재는 그다음에 새로운 새싹이 나고, 수많은 적의는 전쟁은, 싸움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여름이 좋은가요? 아니면 싫은가요?라는 단일 감점보다는 ' 많은 적의가 감춰진 계절' 그리고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햇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어려운 말이 좀 더 가슴에 와닿는 설명인 것 같습니다.
어쩐지 가까운 언덕이라도 올라가 산책이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이쯤에서 여름언덕과 어울리는 차를 찾아보겠습니다.
아쌈 서머(assam summer)
인도의 홈차라면 유명한 지역이 다즐링입니다. 고도가 높아서 고급스러운 홍차의 맛이 난다고 합니다.
인도의 북동부 히말라야 산맥에는 부탄과 네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르질링 혹은 다즐링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평균 해발고도가 2100m이며, 봄, 여름, 몬순, 가을, 겨울 5가지 계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몬순은 우리나라의 장마철이나 동남아의 우기 정도로 보면 되는데요. 겨울을 제외한 4계절동안 찻잎을 수확하고 가공을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조금 낮은 지역 아쌈은 브라마푸트라 강이 흐르는 지역 주변으로 차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온도는 여름에 18~35도 겨울에 7~26도 정도로 평균습도가 82%라서 우리나라로 여름이 계속된다고 보면 되는데요. 이 지역에서 나는 홍차는 대부분 CTC라는 기법으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밀크티용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커피로 치면 로부스타정도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수는 아니지만 고급등급의 홍차가 나오는데요. 인도의 차회사에서 Assam summer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맛과 향이라서 소개합니다.
제가 구입한 아쌈 서머는 골든팁도 있는 홍차입니다.
3g을 뜨거운 물 300ml에 3분간 우려내었는데요.
향이 무척 좋은데 날이 더워서 마시기 힘듭니다.
그래서 얼음이 있는 잔에 옮겼습니다.
여름에는 아이스티로 마셔야 제맛입니다.
그런데 아쌈티는 쓰고 떫음이 진한 편이라서 아이스로 마신다면 더 심해질 수 있지만 아삼서머는 심하게 쓰고 떫지는 않았습니다.
감과 비슷한 과일향과 산미가 조금 있으면서 전체적으로는 구수함이 많이 있습니다.
약간의 낙엽향, 그리고 스모키 함도 있지만 가장 선명한 느낌은 엽차와 비슷합니다.
풀향이 없는 엽차라고 해야 할까요.
여름에 시원하게 아쌈서머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서 텀블러에 담아 가다 쉬면서 한잔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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