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똑똑한 이가 '백석의 시를 읽으라' 라고 한 말을 들었습니다.
쓸데없는 신문기사같은 걸 읽고 있느니 백석의 시를 읽으라는 말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백석의 시'를 권장하는 글과 말을 여러 번 들어서 환상을 가진 상태에서 백석의 시를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이 시들이 왜 천재가 만든 시인줄도 모르겠더구요. 인문학적인 지능이 너무 낮아서일까 싶어서 그의 시를 해석한 책을 빌렸습니다.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라는 책입니다.
왜 우리 문학을 읽고 사랑해야 하는지 아직 잘모르겠다면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의 문을 두드리세요
그의 태생부터 살아온 환경부터 해서 시문학적인 의미까지 잘 설명을 해주는 책입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태어나 모더니스트로 시대의 천재와 미남으로 인기를 누리는 백석은 한편의 짧은 시에 긴 서사를 담기도 하고, 묘사 통해서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언어,사투리를 운율에 맞게 사용해서 그 분위기를 더욱 진하게 우려냅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읽어도 위대한 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곱씹어서 2번 3번 그의 시를 읽으면 어떤 영상이 그려지고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고, 나레이션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백석의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는데 그렇지는 않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한국인의 밥상을 보는 기분이듭니다. 다소 투박한 듯하지만 내용이 깊고 영상을 따라가다보면 무언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영상을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그런 느낌입니다.
그의 시 중에서 저는 2편의 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라는 시입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아응앙 울을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을 버리고 먼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시라고 합니다. 제대로 사랑해보지 못한 저이지만 이 시의 첫 구절이 눈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푹푹 내리는 눈에 괜실히 소주한잔 흘려내면서 응앙응앙우는 흰당나귀 엉덩이를 때리면서
그녀를 잊으려고도, 애꿎은 사랑을 한 나를 비하하지도 안고
그저 푹푹 내리는 눈을 바라봅니다.그렇게 슬픔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려지는 시입니다.
지금은 눈보다는 비가 푹푹 내리꽂는 철에 소주대신 보이차를 마시고
헤어져본적 없는 환상의 유니콘 같은 그녀를 그리워 해보려 합니다.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올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을 ㅗ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판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는 그의 시집 '사슴'에 수록되어 당시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을 한 가족의 운명을 통해 담아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여승의 모습을 비추다가 화면이 오버랩되면서 그녀의 과거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옥수수를 팔며 근근히 연명하던 그녀와 딸은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에 지쳐 딸은 죽고, 그녀는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삶이 당시 나라 잃은 민초들의 삶과 비슷합니다.
당시에 살아보지 못해 공감이 부족하더라도 상상으로나마 비구니의 고통을 헤아려 봅니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보이차를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 보이생차가 떠올랐습니다.
차를 마시는 분들은 차중에 차는 보이생차라며 높은 가격에도 마시곤 합니다.
저는 차를 잘 몰라서 가난해서 맘껏 마시지는 못해서인지
아직도 보이생차가 그리도 좋은 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잔 보다는 두잔째가 좋고
두잔 세잔을 마시니 몸이 데워지고
머리가 뜨끈해지면서 눈은 맑아지는데
그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 한번 읽을 때보다는 두번 읽은 때가 좋고
두번 세번읽으니 공감이 되고 감정이 흔들리고
그 표현을 되뇌이게는 되는데 그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는 것이 보이생차와 비슷합니다.
보이생차와 백석의 시도
좋은 차이고 좋은 시입니다.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라 좋아도 좋은 줄 모르고 오물을 묻혀대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만 좋은 시들 중에 두 편정도는 자꾸만 눈에 밟혀서 소개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으니
좋은 보이생차가 있으면 가까운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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