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은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본인의 이름으로 된 책을 더 이상 출간하기를 거부하셔서 아이러니하기에도 무소유의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이 과잉경쟁을 한 재미있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책의 제목이 좋아서 읽어보았지만
'무엇인가 멋진 말인데~'
이해하기에는 저의 깜냥은 한참이나 모자랐습니다. 물론 지금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지만요.
이번에 도서관에서 찾았던 책은 녹차와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어떤 책이 나을까 싶다 '소설 무소유'를 발견했습니다. 법정스님을 곁에서 지내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정찬주 작가님이 법정스님의 일생을 소설화한 책입니다. 일생을 담백하게 살아오셨다고 생각한 저는 가벼운 녹차와 스님의 일생이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고 이 소설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마트에서 세작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책 소설 무소유
2010년 4월에 초판을 인쇄했으며 323페이의 다소 두꺼운 책입니다. 두껍기는 하지만 사진도 군데군데 읽고 소설화되었기 때문에 읽기에 편한 책입니다.
수필 무소유로 유명하신 법정스님의 출가에서 부터 입적까지의 삶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듯이 연출한 소설입니다. 무소유 수필이 좋지만 조금은 힘들었던 분들이라면 그 저자인 법정스님의 일생으로 표현한 무소유를 조금 가볍게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저자 정찬주
1953년생으로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문학에 유다학사라는 소설로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작품은 불교와 선에 관련된 소설과 글이 많습니다.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산은 산 물은 물', 만해 한용운 님의 전기인 '만행' , '이순신의 7년'등의 책이 있습니다.
소설 무소유 줄거리
법정스님의 일대기이기 때문에 해남의 청년 박재철이 출가를 해서 효봉스님을 만나 행자가 됩니다.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나고 강원에서 경을 배우고 익히고, 통도사에서 불교사전을 편찬하는데 힘을 보탭니다.굴신운동이라는 글이 문제가 되어 해인사를 떠나 다래헌에 지내면서 불교신문 주필을 하면서 쓴 수필 '무소유'를 발표합니다. 인혁당 사건에 충격을 받은 스님은 마음을 다잡고자 다시 송광사로 또 한 번의 출가를 합니다. 송광사의 암자인 불일암에서 17년간 생활을 합니다. 불일암조차 떠나 쯔데기골의 한 오두막으로 출가를 합니다. 이 오두막을 수류산방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꽃이 없는 세상을 꽃이 있는 세상으로 일구고자 '맑고 향기롭게'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인 길상사를 시주받아 세웁니다.
병이 깊어지면서 연명치료를 거부하시는 스님은 79세의 나이로 입적하십니다.
이 소설에서 줄거리 부분만 간추린 내용은 재미가 없습니다. 시간에 따른 줄거리가 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향이 나고 어떤 화두를 얻는가가 중요한 책이다 보니 줄거리를 간추려서 오히려 내용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소설 무소유의 글
"시자야!잭설차 끓여 뒀제. 퍼뜩 가져오그래이."
"잭설차라니 무슨말이오."
시자시절 법정스님이 효봉스님과 쌍계사에 들렀을 때 주지스님이 대접한 차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잭설은 '작설차'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만 소설 내에서는 야생찻잎을 발효해서 찻물이 한약처럼 누런 수색이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흑차였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녹차는 차의 수확시기에 따라 이름이 달라집니다. 양력 4월 20일인 곡우 전에 수확한다고 해서 '우전', 이후로 수확한 어린잎이 세작, 입하 전후로 수확한 중작과 5월 말정도까지 수확한 대작으로 나뉩니다.
이중에서도 우전과 세작의 어린 잎이 마치 참새의 혀 모양을 보인다고 해서 작설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소설 중에서는 강한 발음으로 잭설이라 부른 작설은 우전이나 세작을 구들장에서 발효를 해서 수색이 어두워진 우리나라식의 흑차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안거 결제일까지는 서로 가 편하게 보냈다. 함께 칠불암 아자방 선방도 가보고, 농가로 내려가 작설차도 마시곤 했다. 농가 할머니들이 말하는 작설차는 녹차가 아니라 발효차였다. 뜨끈뜨끈한 구들방에 띄워서 말린 찻잎을 냄비에 넣고 푹 삶은 차가 바로 화개마을에서는 작설차였다.
효봉스님이 서울로 상경하고 홀로 동안거를 지내던 스님께 도반이 생겨 지내던 중 화개마을에서 차를 마셨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도 작설차가 발효차로 등장합니다. 게다가 차를 냄비에 넣고 삶듯이 우려냈다는 것을 보면 자주 해서 드시던 방식 같은데 지금도 화개마을로 가면 만날 수 있을는지 궁금해집니다.
화개마을은 경상남도 하동에 있는 마을의 이름입니다.
암담해서 편지를 띄웠는데 스님께서 단 여덟 글자만 쓴 담박한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소병소뇌(少病少惱) 소욕지족(少欲知足), 조금만 앓고 조금만 괴로워하고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라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월남 파병 문제로 스님께서 종단을 비판한 것에 대해 승적 박탈에 대한 말까지 나온 시점에서 자운 스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내용이라고 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말보다
조금만 앓고 조금만 괴로워하고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라는 말이
가진 것 없이 조급해서 안달하는 저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프지 마라라는 말보다 조금만 아파하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린다.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밖에 내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다.'라는 메모를 보면서 원고지에 수필을 써 내려갔다. 제목은 무소유라고 불렀다.
소설에서 무소유가 발간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무소유를 위해서 책을 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무소유라면 글조차 소유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의 귀찮음과 게으름을 포장하기 위한 무소유였습니다. 진정한 홀가분함을, 자유를 위해 계율을 배우고 지키는 것처럼 게으름과 귀찮음을 소유하지 않고 현재 있는 실존하는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모습이 무소유일 것인데 무소유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막말을 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차를 우려내는 데에는 차의 성질에 따라 물의 온도와 양 그리고 시간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라는 말을 곡해하면 적당한 온도에, 내가 편한 양을, 대충 적당한 시간에 우려내면서 자유롭게 우렸고 그랬더니 맛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스스로의 게으름을 위해 차에 폭력을 가하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차가 자유롭게 제 향과 맛을 뿜어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게으름을 자제하고 적당한 온도와 양과 시간으로 우려내면 차는 자유를 얻어 제 본향과 맛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입정을 하고 차를 한 잔 음미하자, 몸 안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듯했다. 다실의 이름이 수류화개(水流花開)인 것처럼 차 마시는 동안 그 말이 화두가 됐다
황정견이라는 중국 북송의 시인의 한시의 구절이기도 하고 다양한 한시에도 인용되는 구절이 수류화개라는 문장입니다. 이를 차를 마시는 모습에 비유를 하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스님은 수류화개라는 화두에 갇혀있지 말고 생기 있게 흐르고 자신의 개성대로 피어나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차 한잔을 마시는 이가 수류화개의 느낌을 얻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보았습니다.
어떤 틀에도 갇힘 없이 자기 식대로 산다는 것은 자유를 뜻했다. 법정은 그것을 홀가분함이라고 말했고 자유란 말은 쟁취해서 얻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급적 쓰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겨난 저의 화두는 '자유'였습니다. 스님의 무소유는 가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는 세상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셨고 활동적으로 생활하셨습니다. 그저 가지지 않음이 아니라 가지지 않음으로 자유를 홀가분함을 쟁취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런 홀가분함, 맑은 고독과 하나가 되는 것이 법정스님의 깨달음이며 이를 위해 가는 수행이 선이라고 합니다.
당나라 노동의 '칠완다가'를 빠르게 중얼거렸다. 법정이 불일암 시절에 원문을 크게 의역한 칠완다가였다.
차 한 잔을 마시니 목과 입을 축여주고
두 잔을 마시니 외롭지 않고
석 잔째엔 가슴이 열리고
네 잔은 가벼운 땀이 나 기분이 상쾌해지며
다섯 잔은 정신이 맑아지고
여섯 잔은 신선과 통하며
일곱 잔엔 옆 겨드랑에서 밝은 바람이 나는구나
우선 차를 일곱 잔이나 마신다는 점에 놀라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중국의 찻잔은 작습니다. 우리나라 작은 찻잔옫 한 잔에 30~40ml 정도이기 때문에 7잔을 마셔도 200~250ml 정도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신선과 통하거나 겨드랑에서 밝은 바람이 나는 경험은 해본 적은 없지만 홀로 차를 마시며 읊기에는 멋진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소
독립기념관 백련지에 경복궁 연못에도 연꽃이 없어진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신교의 장로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불교의 상징이라며 연못에서 연꽃을 모두 제거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연못에서 연꽃이 없어져서 맑고 향기롭지 못한 세상이라 다음 해에 '맑고 향기롭게'를 창설했다고 합니다. 마음의 맑음을 위해서 실천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지켜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임을 만듭니다.
이 단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장학활동과 출판, 생태에 관심을 가지는 활동을 이어가는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법정은 개울물을 길어다 찻물을 끓였다. 차 한 잔이 그리웠다. 차는 혼자 마실 때가 가장 향기로웠다. 텅 빈 충만을 실감하게 했다.
차는 혼자 마실 때 허허로움이 좋습니다.
한잔의 향과 두 잔의 향이 달라서 코와 입안으로 들어오는 향과 맛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좋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눌 이가 있는 자리도 나쁘지 않겠지만
저는 혼자 마시는 차가 좋습니다.
비록 텅 빈 충만은 모르겠지만요.
차 마시는 대목이 많아서 인용 구문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스님들께서 차를 많이 드시기도 하고 재배하기도 하며, 특히 지리산 일대, 하동 일대에 차가 많이 나서 자주 언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위대한 분들의 일대기를 읽으면 저의 작은 그릇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내용만 얻어가면 만족입니다.
제가 얻는 내용은
수류화개와 홀가분함입니다.
차를 마심에 수류화개를 잊지 말고
살아감에 홀가분함을 정진해야겠다 싶은 소설 무소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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