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화가라면 고흐와 더불어 클림트가 꼽힌다고 합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동유럽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빈의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스트리아는 북쪽으로는 독일을 헝가리, 체코, 스위스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작은 국토면적을 가진 국가입니다. 16세기가 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문화와 예술이 번성한 곳이 되었지만,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패전하고 이후 오스트리아 출신인 아돌프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에서 또다시 패전하면서 공화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클림트가 있었던 19세기에서 오스트리아는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었지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고 있으면서 민족주의로 인한 내부 분열이 심했던 시기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이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강한 지원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등이 있으며 지금도 유명한 빈 하모니 오케스트라도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로는 아르누보 예술가인 구스타프 클림트 그리고 에곤 쉴러도 있습니다.
그래도 대표적인 오스트리아 아니 빈, 비엔나의 화가라면 클림트를 뽑을 수 있습니다. 클림트의 작품은 유디트, 생명의 나무도 유명하지만 특히 그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은 '키스'입니다. 금박의 장식과 에로티즘으로 유명한 키스는 클림트의 대표작품이지만 이 한 작품만으로 그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나 1918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동안 빈에 머물면서 당시의 회화와 내부인테리어 등에 영향을 끼친 화가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은 서유럽과는 달리 비잔틴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활동 시기에는 동양문화 특히 일본의 예술풍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금시대의 그림자를 나타내듯 클림트의 황금시대 작품은 화려 합니다.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화려한 금색과 환상에 빠진 여인의 향연만은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역사주의 화가로서 시대의 장면을 사진처럼남기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이후 팀을 이루어 천장화를 그리면서 서서히 스스로의 화풍을 만들어갑니다. 보수적인 예술의 도시인 빈과는 대조적으로 뉴욕에서는 빌딩이 파리에서는 에펠탑이 올라가고, 파리에서 인상주의, 베를린의 표현주의 등의 변화에 클림트가 중심이 된 23명의 예술가들은 빈 분리파가 탄생합니다. 빈 분리파는 인상파나 야수파 등과는 다르게 조각, 건축 등이 하나의 예술로 장식 주의적인 느낌이 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주류사회에서도 민족주의자들을 견제하려는 움직임 덕분에 후원을 받아가며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기존의 권위와 체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각의 작품은 기성 지식인들 층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기성 지식들에게는 지나치게 관능적이고 모호하게만 보이는 그의 작품에 대한 세간의 끊임없는 비판에 그는 더 이상 공공기관의 청탁을 받지 않기로 하며 그의 작품만을 만들게 됩니다.
그 이후 1902년 14회 빈분리파의 전시에 세 보인 베토벤 프리즈로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시작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키스'는 1908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당시 미술전람회 쿤스트 샤우 전시담당 책임자로 이 전시에 16 개의 작품을 출품하고 가장 좋은 자리에 '키스'를 전시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벨페 데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원래 오이겐 대공의 궁전이었는데 상속자가 없어 황실로 인수되고 제국 황실 미술관으로 사용한 곳입니다.
꽃이 가득한 절벽 끝에서 헐렁한 옷을 입은 남녀가 키스를 하려합니다. 그들의 옷은 마치 이집트의 장식이 떠오릅니다.
장식 처렁 보이는 배경과 그들의 옷과는 대조적으로 두 남녀의 얼굴과 팔다리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긴장한듯한 발가락과 몽롱한 표정은 관능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그의 몽롱한 분위기는 1900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발표하면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접근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키스를 보면서 참고로 할 또다른 키스의 다른 버전은 슈토클레 하우스 식당 장식에 있는 생명의 나무 양 옆에 있는 '기대'라는 여신과 '충족'이라는 남녀의 모습입니다.
클림트는 슈토클레 하우스를 마지막으로 10년을 몰두했던 황금시대를 접었다. 금빛으로 빛나던 번영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갔다. 빈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영화로워 보였지만, 그것은 단지 백일몽일 뿐이었다. 제국의 질서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클림트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중-
책 클림트 - 빈에서 만나 황금빛 키스의 화가를 읽으면서 클림트의 키스를 이해해보기 위한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황금빛 키스를 보면서 떠오르는 차는 무엇일까 고민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클림트는 방탕하다고 생각해서 티 칵테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만 오히려 알코올은 배제해야만 하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화려함과 관능적인 느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차가 화려한 금빛을 낼까요?
딸기크림 망고 티
저는 망고가향 홍차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향홍차 하나로는 조금 화려함이 부족해서 레몬그라스와 루이보스를 조금 더하고 꿀을 조금 넣어서 그 화려한 향을 더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키스의 관능적인 짜릿함은 딸기 아이스크림을 사용해서 그 색과 향을 크림으로 더하려 합니다.
딸기 크림 망고 티 재료
딸기 아이스크림 50g
망고 가향 티 티백 1개
루이보스 2g
레몬그라스 1g
꿀 1큰술
뜨거운 물 200ml
장식용 건조 딸기
딸기 크림 망고 티 만들기
우선 망고 홍차와 루이보스, 레몬그라스, 꿀과 함께 뜨거운 물 200ml로 진하게 차를 우려냅니다.
(아이스로 만드시려면 뜨거운 물 100ml로 우려내시고 얼음이 든 잔에 부으시면 됩니다)
그동안 딸기 아이스크림 50g을 전자레인지에 10초간 돌려서 잘 저으면 딸기 크림이 만들어집니다.
차를 잔에 붓고
그위에 딸기 크림을 올리고
가능하면 건조 딸기를 분쇄한 딸기 가루를 뿌려줍니다(되도록 뿌리는 편이 더 맛있습니다)
사실 날이 춥지만 않았다면 아이스로 만들면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망고향이 황금의 느낌이 들고 딸기향과 레몬 그라스의 레몬향이 합쳐져서 짜릿한 키스 같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달콤한 꿀이 이들의 만남이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꿀을 빼고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영 맛이 없습니다. 꿀은 1큰술 이상 꼭 넣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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