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달이는 향기
- 무의 혜심(1178-1234)
시자 부르는 소리 송라 안갯속에 지고
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 바람에 전해온다.
백운산 아랫길로 막 접어들자마자
어느새 암자 안에서 노사를 만나뵌듯
무의 혜심이라는 분은 고려시대 승려로 1205년 가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강진 월출산 아래 백운암에 머물고 있을 때 혜심 스님과 선승과 국사를 뵈러 가는 길에 사자(노승 시중드는 사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일행들에게 모두 들렸다고 합니다. 스승님께 도착했더니 도착할 줄 알고 차를 끓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가 있는 책은 우리 선시 삼백수라는 책에 있는 시 중에 한편입니다. 이 책은 스님들의 5언 7언 절구시를 모은 책으로 한 야대 국문과 교수님인 정민 작가님이 엮은 책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차 달이는 향기라는 시를 쓴 무의 혜심 스님은 고려시대의 승려입니다.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에 차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절을 중심으로 다방과 다소에서 국가와 개인이 차를 재배하고 관리했는데요. 귀족문화의 중심이 되었으며, 사치스러움에 원성이 있을 정도로 성행했다고 합니다.
1205년이라면 중국에서 송나라 시대정도입니다. 송나라 시대의 차문화는 다기와 값비싼 차로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유행한 차는 요즘 우리가 아는 말차, 맛차와 비슷하게 떡차를 갈아서 끓여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와 지인들이 오는 것을 예지한 스님이 차를 달여 만든다는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차에 관한 시가 있습니다.
차 석 잔
-원감 충지(1226~1292)
새벽 미음 한 국자 든든히 먹고
낮엔 밥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목마르면 차를 석 잔 달여 마시니
깨달음이 있고 없곤 상관 않으리
원감 충지라는 분은 고려 후기의 승려입니다. 19세에 장원을 하고 일본 사진으로 가서 활엵을 했지만 29세에 출가를 하고 국사가 되었습니다. 원나라 세조의 흠모를 입어 1275년 원나라로 갔더니 세조가 스승의 예로 환대를 했고, 귀국하자 충렬와이 대선사의 승계를 내렸다고 합니다. 39세로 입적하였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지위와 학식을 가진 스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음과 밥은 한 그릇에 든든해하시더니 차를 석 잔이나 달여 마신다는 표현에 당시의 찻잔이 크지 않다면 요즘으로 치면 아메리카노 3잔 마시는 정도였을까요?
목련
-아암 혜장 1772-1811)
바위 구석 어여쁜 꽃 몇 겹으로 달렸는데
이곳 사람 목련이라 말하여 주는구나.
한 가지 비스듬히 공중으로 뻗어가서
앞산의 옥순봉을 살짝 덮어 가려주네
아암 혜장 스님은 어려서 대둔사로 출가했다고 합니다.
시에서 말하는 옥순봉은 충분 제천에 있는 봉우리로 남한강 하부지역이라고 합니다. 옥순봉이 보이는 어느 산사에서 봄을 맞이하신 듯합니다. 스님의 시라기보다는 현대의 시처럼 감성적인데요.
그래서인지 뛰어난 능력이 있었음에도 35세에 시와 술에 빠져 1811년 두륜암 북암에서 입적했습니다.
벚꽃
-용운 만해(1879~1944)
지난겨울 눈이 마치 꽃과 같더니
올봄에 꽃이 흡사 눈이로구나.
눈과 꽃이 모두 다 참은 아닌데
어이해 마음 이리 찢어지는가.
님의 침묵을 쓰신 만해 한용운 님의 시입니다. 이 시를 쓸 때는 일제의 옥에 갇혀 추운 겨울을 나고 감옥 창살너머로 눈꽃과 벚꽃을 표현한 시라고 합니다.
책에서 설명을 읽지 않으면 감상적인 벚꽃을 노래한 시 같지만 설명을 읽으면서 숨겨진 감정과 느낌이 곱씹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암 혜장 스님은 쓴 목련이라는 시를 읽으면 봄철 짧은 시간 하얀 꽃과 진한 향기를 남기고 지는 목련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을 가진 꽃으로 겨우내 털옷을 입고 봉우리를 키우다가 3~4월경에 하얗거나 자색의 꽃을 이파리 보다 먼저 피워냅니다.
꽃은 자주 보지만 그 향기도 진하고 부드럽습니다. 독성이 없는지 목련꽃을 말려서 차로도 마시는데요. 목련하나로만 우려내기보다는 다른 차에 포인트로 넣어주면 꽃향을 더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녹차보다는 홍차나 커피와 잘 어울리는 편이었는데요
목련꽃차와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은? - 홍차, 녹차, 아이스티, 커피
목련(木蓮)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이름으로 3월이면 나뭇잎보다 먼저 화려한 흰색 혹은 자주색을 꽃잎을 펼치는 봄을 알려주는 꽃입니다. 봄꽃 중에서도 이르게 피는 꽃이라 벌들이 좋아하
heeheene-tea.tistory.com
오늘은 홍차중에서 가향홍차인 레이디 그레이라는 홍차에 목련꽃잎을 한장 띄워보려합니다.
얼그레이티는 베르가못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시트러스향이 진한 홍차이지만, 레이디 그레이는 감귤향이 더해진 홍차로서 부드러운 시트러스향이 특징입니다. 목련의 부드러운 향과 잘 어울리는데요.
따끈하게 우려낸 레이디그레이에 목련 꽃이 더해지면서 얌전하던 차에 화려한 화장을 한 듯 합니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고 무척 잘 어울리는데요. 목련향이 레이디그레이 안에서는 마치 연꽃향처럼 느껴지는 듯 제옷을 입은 듯합니다.
우연이지만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추운 날씨네요. 목련이 필 때쯤이면 땅도 녹아서 따뜻할 때일 것인데 하루하루는 제 갈길만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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