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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그리고 책, 문학, 예술

[책과 TEA]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으면서 마시는 얼그레이 티

by HEEHEENE 202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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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차 공부를 하러 가게 되면 나이 드신 분들은 주로 중국이나 인도에서 차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시지만, 젊은 분들은 일본이나 대만의 차문화에 대해 경험을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소설을 보면 차가 중간 매개물이 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일본의 차

오늘 소개할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키친'이라는 소설에도 차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사람을 만나서 머쓱한 분위기에는 '나 차 한잔 줄래' 라는 간단한 부탁으로 상대의 부담스러움을 경감시키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에도 '우리 차 한 잔 할까?'라는 말로 휴식을 취합니다. 

소설 키친의 후기에는 이 소설에 대한 작가의 말이 있습니다.

키친의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나는 옛날부터 오직 한 가지를 애기하고 싶어 소설을 썼고, 그에 대해 더 이상 얘기 하고 싶지 않아 질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책은 , 그 집요한 역사의 기본형입니다.

작가는 웨이터리스로 일을 하면서 이 소설을 틈틈이 썼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와중에서 글쓰기를 계속하게 했을까요? 

키친의 차례

이 소설 키친은 3개의 소설이 한 권의 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친과 만월, 달빛그림자입니다. 키친과 만월은 등장인물과 사건이 연결되어서 만월은 키친 2라는 부재가 있습니다. 달빛 그림자는 전혀 다른 인물이 나와서 키친의 세계관으로 읽다가는 순간 당황합니다. 전혀 다른 배경의 소설이었습니다.

 

내용이 연결되든 연결되지 않든 공통적인 배경은 죽음과 남겨진 자 그리고 홍차입니다. 

키친에서는 할머니를 잃은 미카게에게 유이치가 다가옵니다. 차를 함께 마시면서 미카게의 상처는 아물어갑니다.

만월에서는 유이치가 어머니? 아버지를 잃고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돈까스덮밥을 가져다주고 말을 합니다. '차 한잔 줄래?' 

달빛 그림자에서는 사츠키가 애인이 교통사고를 죽고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보온병에든 차를 마시다가 우라라를 만나서 위안을 받습니다.

 

이 소설 키친은 배경은 키친이지만 죽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 위로에 관한 소설입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하면서 섬세한 묘사와 죽음, 위로는 잘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해 답답함 그리고 조금 어두운 먹색의 위로를 받고 싶다면 소설 '키친'을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네요.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으로 시작합니다.

일본의 부엌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주인공이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가장 방심하는 속내를 보이는 곳이 부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의 겉면에 속하는 거실보다는 내밀한 깊은 곳을 좋아하는 주인공은 부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닦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도 부엌을 보고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문득 저의 부엌을 다시 보게 됩니다. 청소를 좀 해야겠어요.

 

소설 키친에서는 홍차나 푸알차도 나오지만 저는 얼그레이에 주목했습니다.

엄마를 잃은 유이치와 그를 위로하는 미카게와 함께 작은 찻집을 갑니다.

그는 내가 싫어하는 얼그레이라는 냄새 나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다나베네 집에서 깊은 밤이면 종종 이 비누 같은 냄새가 났던 기억이 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내면을 상징하는 키친을 좋아하고, 미카게는 향이 강한 얼그레이 차를 좋아합니다. 상반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한쪽은 할머니의 죽음을, 한쪽은 엄마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주인공이지만 맛있는 돈까스 덮밥에 무력감과 슬픔을 덮고 유이치를 위로하기 위해 주방에 주문을 넣습니다.

카츠동 - 돈까스덮밥

아저씨, 포장도 되나요? 일인분 더 만들어 주시겠어요?

충동적인 미카게의 돈까스배달은 엄마를 잃고 힘들어하는 유이치를 위로해줍니다. 그리고 대신 보온병에 든 차 한잔을 마시고 다시 일터를 향해가기 위해 택시로 갑니다.

 

마음으로는 돈까스덮밥이 유혹하지만 저는 미카게가 좋아했던 얼그레이 티를 마셔보려 합니다. 얼그레이 티는 베르가못 향이 더해진 가향 홍차입니다. 대표적인 회사가 영국의 트와이닝사의 얼그레이 티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와 얼그레이 티

주인공인 유이치의 말처럼 비누향처럼 느껴져서 호불호가 갈리는 차입니다. 비누향이라지만 저는 화장품향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이치 엄마의 화장 같다고 할까요. 조금 부담스러운 향이지만 아름다운 향입니다.

얼그레이 티는 영국의 그레이백작이 선물 받은 홍차가 매력적이지만 다시 구하기는 힘이 들어서 영국의 한 차 회사에서 베르가못 향을 더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전혀 다른 차이지만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서 그레이 백작의 이름을 딴 홍차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은 백작이라는 뜻이고 그레이는 백작의 이름입니다. 당시에는 귀족들만 마시던 차였는데 이제는 누구나 티백으로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 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가향차라서 비누향, 화장품 향이 난다는 품평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차의 가치도 시절에 따라 변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얼그레이티를 좋아하는 분이 계신가요? 흔치 않은 얼그레이 티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차 한잔 하실래요?'라고 문자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별말이 없어서 같이 차 한잔 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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