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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그리고 책, 문학, 예술

[책 그리고 TEA]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녀석의 흔적이 - 비행운 그리고 정산소종 티커피

by HEEHEENE 2022.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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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았습니다.

비행운

아파트 머리 위로 기다란 대각선의 흰 구름이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지나간 모양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온도가 너무 달라서
비행운이 만들어졌네
내가 머물기에 여기는 너무 높아서 한숨 자국만 깊게 드러났네

나른한 목소리와 음률과 이 가사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문득 같은 이름의 소설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서관의 검색창에 '비행운'이라고 눌렀습니다.

작가 김애란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이라는 소설이 한 권 있습니다.

2012년에 초판이 나온 소설로 여러 지면에 출판된 소설을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던 것 같습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

물속골리앗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큐티클

호텔니약따

하루의 축

서른

 

8편의 소설인데 어디에도 비행운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탐구심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비행운은 나른한 오후 문득 하늘을 보았더니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버리는 구름을 보고 떠오르는 몽상 같은 것입니다만 

어째서 작가는 비행운을 책의 제목으로 잡았던 것일까요? 

소설 비행운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주인공은 살이 찐 그리고 한 선배를 짝사랑하는 여인입니다. 모처럼 불러준 선배에 부름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갔더니 선배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빠진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여자를 찾기 위해 모처럼 연락을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벌레들'에서는 장미빌라로 이사 간 임산부의 이야기입니다. 이사를 가서 임신을 하려 했는데 의도치 않게 임신을 했고 그래서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밖으로만 다녀야 하고, 벌레들은 여름이 지났음에 자꾸만 많아집니다.

'물속 골리앗'에서 주인공은 부모님과 강산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잘 살고 있는데 원래 주인이라는 작자가 아파트를 팔아버려서 소액의 보상금으로 이사하라는 재건축 통보에 거부하고 저항하는 중 아버지는 고공 크레인에서 실족사를 하고 어머님은 정신을 놓고 누워계시며, 전기와 물이 떨어진 상태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마가 왔는데 많이 옵니다. 온도 시가 물에 잠기고 주인공은 뗏목을 만들어 도망을 칩니다.

소설 비행운

세편의 줄거리를 보아도 비행운(飛行雲)은 없습니다. 대신 비행운(非幸運)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비행운을 뿌리며 날아가 버리는 비행기같이 세상을 자유롭게 호화롭게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일 발음인 비행운(非幸運)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나른함 보다는 처참함과 비참함이 소설의 끝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이런 이야기를 썼다면  징징거리는 늙은이의 주절거림으로 세상에서 묻혔겠지만 작가의 소설은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 감기는 눈꺼풀을 버티고 한 편씩 읽게 되더군요. 

특히 비참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 매력적이라서 다음 소설에는 어떤 구절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수박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소설 물속 골리앗의 일부입니다. 한참 더운 여름 중에서도 7월 중순부터 쯤 장마가 시작됩니다. 이 기분 나쁜 계절을 단감이 당도를 잃은 홍시가 되는 것처럼 묘사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도를 잃은 홍시가 장마철 싱거워지는 수박의 맛과 상상력에서 비벼지면서 재미있는 공감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나무

천 개의 잎사귀는 천개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개의 방향은 한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속 골리앗의 일부입니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어머님은 아프시고, 물도 전기도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에 비가 오는 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성적인 문구가 많이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빗방울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 있었다. 빗방울은 저마다 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갖고 있었다.

이 또한 물속 골리앗의 일부입니다. 비오는 소리를 묘사한 장면입니다. 

 

타워 크레인

그것들은 대부분 한쪽 팔이 길었다. 그래서 마치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처럼 보였다.

물 속 골리앗의 일부입니다. 원래 십자가가 양팔 길이가 같아야 할 텐데 기독교를 보면 언제나 팔꿈치는 안으로 굽어져 있고 한쪽은 빵을 한쪽은 칼을 들고 있는 듯하게 보입니다.

그래서인가 어느새 도시에서 십자가보다 많아진 타워크레인은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비행운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는 중일 텐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얼마 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안도의 긴 한숨 자국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이었다.

소설 하루의 축에서 공항 청소부로 일하는 주인공은 비행운을 자주 봅니다. 이 소설에서 비행운(飛行雲)에 관한 유일한 묘사입니다.  비행운(非幸運)의 삶에서 바라보는 비행운(飛行雲)은 날아간 자들의 흔적입니다. 그들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마치 그녀가 청소한 화장실의 오물들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을 버려두고 다들 날아가 버립니다.

 

먼지 뭉치처럼 나른한 듯 민첩하게 움직이는 꽃씨를 눈으로 좇았다. 씨앗으로 꽉 찬 계절. 마치 세상 모든 식물들이 '나는 살아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거예요!'라고 외치며 사방에 전단지를 뿌리는 듯했다.

소설 큐티클에서 주인공 오랜만에 비가 그쳐서 일까 기분이 좋아서 외출을 합니다. 비가 오고 나면 상쾌해야 하는 날이지만 봄철은 으레 그렇듯이 꽃가루가 날립니다. 정말로 전단지를 뿌리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사람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소설 호텔 니약따에서 서윤이 헤어진 남자 친구에서 전화를 걸어서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불행을 버티게는 해주지만 반복되고 오래되면 단단하고 두꺼웠던 사랑이라는 기둥도 언젠가는 닳아서 없어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unlucky

이런저런 비행운(非幸運)들이 겹쳐지면서, 비행운 (飛行雲)의 꿈은 좌절된다.

책의 말미에는 해설의 글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모든 내용을 한 번에 꿰뚫는 문장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먼 나라 이야기로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돕고 싶지 않았습니다. 뭐 비행운(非幸運)의 삶에서는 괴롭히지만 않으면 그걸로 만족하니까요. 도와주면 오히려 불안하죠. 또 다른 비행운(非幸運)이 많아질 것 같거든요.

 

정산 소종 티 커피

슬프게도 공감을 많이 해서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의 비행운이든 비행운(非幸運)의 비행운이든 입맛이 영 텁텁합니다. 

그래서 이 기분을 그대로 커피에 녹여보렵니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비행기 매연과 비슷할 것 같은 스모크향이 가득한 정산 소종에 검은색 커피를 더해보겠습니다. 어떤 맛이 날까요?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넣어줘야겠죠? 설탕을 잔뜩 넣어주겠습니다.

정산소종 티커피 재료 -정산소종, 커피, 시럽

정산 소종(랍 상소 우 총) 2g을 뜨거운 물 100ml에 3분간 우려내었습니다.

얼음이 든 잔에 차를 담고

심플 시럽 30ml를 넣고

액상 에스프레소  1포 15ml를 넣었습니다.

정산소종 티 커피

하늘의 비행운처럼 하얗기보다는 누런 하늘에 검은색 매연이 퍼져가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스모키 한 향과 커피 향은 제법 잘 어울립니다.

정산소종 티 커피

죽어봐라라고 넣은 30ml의 과다한 시럽은 의외로 적당한 당도이군요.

 

집에 랍 상소 총이나 정산소 종이 있는데 맛이 없어서 골치라고 생각하시나요?

커피와 설탕과 섞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비행운(非幸運)에 빠져서 웃고 있는 하루에 카페인과 당류는 국가에서 허락한 마약이 니니 까요.

비행운 그리고 정산소종 티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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