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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그리고 책, 문학, 예술

[책과 TEA] 그리움으로 언 몸에 쨍 하고 파고드는 한 줄기 햇빛 - 코끝의 언어와 정산소종

by HEEHEENE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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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소종을 끓이니 희미한 송진 향과 함께 찻잎으로부터 훈연향이 퍼진다. 이 차는 나무를 태워 우수에 젖어들게 한다. 오로지 혼자서 집 밖을 떠도는 외로움의 냄새다. 이향을 맡으면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려진다. 추위 속에서 혼자, 언몸을 녹여줄 뜨거운 차 한잔을 기다리는 사람. 찻잎의 냄새를 다시 맡아보니 시트러스 향이 느껴진다. 우수에 젖은 기분을 쨍, 하고 파고드는 한 줄기 햇빛이다.

코끝의언어
코끝의 언어

책 코끝의 언어의 저자 주드 스튜어트가 차에 관해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대게 차(TEA)라고 하면 녹차나 홍차를 생각하게 되고, 그중에서 서양에서는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나 얼그레이티를 자주 마신다고 하는데 어째서 서양인인 그녀가 여러 가지 차 중에서 하필이면 정산소종으로 차의 냄새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정산소종과 얼그레이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정산소종 그리고 얼 그레이 티의 역사

정산소종
정산소종

영국에서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차를 재배하기 전에는 중국에서 국가적으로 비밀로 해서 차의 유통을 제한했었습니다. 그래서 소량의 차만이 고급 사치품으로 유럽으로 수출되곤 했습니다. 중국의 푸첸성 우이산을 한자로 쓰면 '정산'이 되는데요. 명나라 말기 전쟁을 피해서 이 마을의 차 생산자들이 잠시 피난을 다녀옵니다. 한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 비에 젖어버린 찻잎에 망연자실해졌습니다. 근처에 많이 있던 소나무로 훈연을 해서 그나마 찻잎을 말려보았습니다만 강한 훈연 향 때문인지 아무도 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 유럽의 상인이 왔다는군요. '이거 신제품이다' 라며 살살 꼬셔서 구입했다고 하는데 기름기가 많은 식사를 하는 유럽인들에게는 강한 훈연향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인기가 좋아진 정산소종은 수출을 하면서 다시 웃게 되었다지요. 심지어 이 인기에 비해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해서 적당히 삼나무 훈연을 하는 작퉁제품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얼그레이티
얼그레이티

이 정산소종은 훈연 향 외에도 산화가 되면서 용연향이라는 시트러스 과일과 비슷한 향이 있었는데요. 이런 향을 매력적으로 느꼈지만 늘 물량이 모자란 가운데 1830년대 영국의 총리였던 찰스 그레이 백장의 의뢰로 차 판매상이 비슷한 차를 개발하게 됩니다. 당시에 베르가못이라는 과일의 향이 이와 비슷하게 느꼈던 판매상은 과일 가향 홍차를 만들어서 제공하였고, 정산소종과는 다르지만 영국의 식사와 잘 어울려서 만족했고, 귀족사회에서 인기가 좋았다지요. 그래서 그 판매상은 백작의 허락을 얻어 이름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얼 그레이( Earl grey) 티가 됩니다. 지금은 트와이닝사가 그 판매상이라고 합니다만 예전에는 다른 업체였으나 지금은 트와이닝사에 합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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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정산소종과 얼그레이 티의 관계를 보면 냄새를 중요시하는 저자가 서양인으로서 본 차의 향에서 기원은 정상소종의 시트러스 향 (용연향)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 향을 표현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책 코끝의 언어에서는 차 외에도 50가지 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향기에 관한 책처럼 화학식이나 구성성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치 시를 쓰듯이 명상을 하듯이 향기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인문학적인 고찰을 담아낸 내용입니다. 그 향기의 종류도 장미, 재스민 같은 꽃에서부터 바닐라, 초콜릿, 시나몬 등같이 익숙한 향과 더불어서 , 금방 깎은 연필, 유향, 새 차, 돈, 스컹크, 용연향, 갓난아기처럼 생각해보지 못한 향기에 대해서도 고찰을 설명합니다. 게다가 심령체, 성자의 향기 등 조금은 이상할 것 같은 향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몇 가지만 짧게 소개해 봅니다.

 

책 코끝의 언어 내용

흙내
페트리코

페트리코(petricho). 바싹 마른 흙이 비에 젖으면서 올라오는 이 냄새는 흙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넉넉하게 감싸며 피어오른다. 이 냄새는 초록색 풀 냄새에 가벼운 광물 냄새가 섞여 있다 뒤이어 약간 새큼하면서 싱그러운 물방울의 기운이 느껴진다.

향기 수업에서 흙내 혹은 지구향이라고 불리는 향입니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 내리는 소나기를 만나면 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흙이 없는 곳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도 페트리코의 향은 같은 느낌일까요? 아니면 시멘트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의 향처럼 기억될까요? 

베이컨
베이컨

베이컨에서 나는 냄새는 전형적인 마이야르 반응이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이름에서 따왔다. 식품이 가열되면 식품에 함유되어 있던 당분이 분해되어 아미노산과 반응한다. 이때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 화합물이 많이 방출되며 특별한 풍미가 나타난다. 마이야르 반응은 바로 이 일련의 화학반응을 칭한다. 방출되는 화합물은 대부분이 탄화수소와 알데하이드다. 마이야르 반응은 끓이거나 볶거나 굽는 동안 갈색으로 변하는 모든 음식이 왜 그렇게 유혹적인 매새를 풍기는지 설명해 준다.

베이컨은 삼겹살을 향신료와 감미료를 넣고 훈증시킨 제품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베이컨의 향은 훈연에 기름, 그리고 향신료의 향인데 이를 자주 먹는 문화권인 저자에게는 마이야르의 향으로 느끼는군요. 저에게 마이야르는 빵이나 소고기 직화구이정도의 향인데, 아무래도 문화에 따라 맡을 수 있는 향의 역치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필
연필

글쓰기에 냄새가 있다면, 아마 연필 냄새일 것이다. 이는 나 혼자만의 고집스러운 확신이다. 컴퓨터 타자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볼펜도 애착이 가지만, 살아있는 과정으로서의 글쓰기를 표현하기에 펜글씨는 너무나 고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연필은 지우기 그리고 고쳐쓰기의 반복이라는, 글쓰기의 진실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만약 글쓰기라는 행위에 물질적인 형태가 있다면, 그 형태는 언제나 연필처럼 생겼을 것이다.

연필의 냄새가 글쓰기의 향이라는 점은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잉크의 향도 더하고 싶은데요. 그것도 모나미의 볼펜 똥 같은 잉크 향이 저에게는 글씨기의 냄새처럼 느껴지는군요.

스컹크
스컹크

거의 칼날처럼 날카롭고 독하다. 아주 깊고 지독하게 너울거리는 썩은 계란 같은 황 냄새에 기름진 광택을 입힌 것 처럼 느껴진다. 스컹크 냄새는 불쾌함과 복잡함과 날카로움이 균일하게 섞여 있다.

저는 아직 스컹크의 향을 직접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썩은 계란같은 황 냄새에 기름진 광택이라니 어린 시절에는 정화조를 일정 시간마다 차가 와서 퍼 갔는데요. 그럴 때면 골목에 썩은 계란 같은 황 냄새가 가득해집니다. 이것에 기름진 느낌을 더한다니 이번 생에는 그다지 맡아보고 싶지는 않군요.

차 정산소종

코끝의 언어정산소종
코끝의언어와 정산소종

과연 제가 가지고 있는 정산소종도 그리움과 그리고 한줄기 햇살 같은 향을 맡을 수 있을까요? 그다지 비싸지 않은 정산소종이라 크게 기대는 없이 햇살을 찾아서 물을 끓이고 차를 덜어냅니다.

아마도 서양문화권에서 홍차를 즐겨 마신 저자는 홍차의 티팟에 정산소종을 넣고 우려내서 마셨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저는 중국차이기 때문에 개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려내는 방법은 첫물을 짧게 해서 버리고 찻잎을 버리지 않고 조금씩 차를 마셔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훈연항이 강합니다. 소나무까지는 아니고 삼나무향으로 만든 상자 향이 느껴집니다.

두 모금 때에는 후향에 과일향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오렌지 같기도 하고 어쩌면 열대과일 같기도 합니다. 이 정도가 저자가 말한 그리움에 햇살 한줄기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 모금 네 모금부터는 차에 있는 과일이 삼나무 상자에 가득 찬 향이 느껴집니다. 그리운 사람의 따뜻한 햇살이 가득 찬 것을 보면 만나서 반가운 포옹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동양권의 차는 한 가지 향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향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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